마음수련 사이비로 굳어진 마음을 위한 상상의 힘

사이비불안극복은마음을유연하게 하는것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시절, 항상 책만 읽고 공상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지금’과 동떨어져 둥실둥실 땅에 발이 안 닿는 상태라고 할까, 조금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사람이요. 저도 역사 소설에 듬뿍 빠져 있었으니까 비슷하네요 (웃음)

꿈과 환상은 마음의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다면, 가치가 있습니다. 상상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상식과 규범, 신념 등 사회통념이나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부지불식간에 얽매임과 집착이 생깁니다.
발을 담근 물만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되면 그게 다 인줄 착각하고 삽니다. 흘러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강의 모습에 허둥지둥 당황해버립니다. 끝없이 펼쳐진 큰 강을 느끼고 있어야만 의문이나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눈앞의 경치를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세계를 받아들인 상태가 돼서야 비로소 눈앞의 지금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마음수련 사이비처럼 불합리한 게 많습니다. 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 서양 합리주의에 물들기 전에 “어쩔 수 없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다”라는 체념같은 달관이 유행했습니다.
불행히도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비난하고, 증명되지 않아서 사이비로 취급합니다. 이론에서 벗어난 “상상”은 사이비로 딱딱해진 마음에 효과가 있습니다.

원래 우리는 상상하는 힘을 사용하여 평소 위험에 대비하거나 직접 겪지 않은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상상은 창조’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비가 올 것 같으니까 우산을 가지고 외출하거나, 동전을 가져갑니다.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마법 같은 엄청난 일이 아니라, 극히 평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부드럽게 풀어주면 편견을 깰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관점을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각도를 바꾸어 바라보면, 지금까지 평면이었던 것이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즉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인 것처럼 하나에 전혀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옳다고 단정하지 않고, 뭐든지 그럴 수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야말로 눈앞의 경치를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은 과학의 통설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모순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상상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즐기십시오.
상식과 통념은 버리고 가는 것이 좋지만 현실까지 두고 가면 안됩니다.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흘러가는 것은 기분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지금’에 있어야 자신의 현실이 창조되어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맡기고 바람 부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중심이 있어야 마음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중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딘가로 날아갈 뿐입니다.
거기엔 확대됨이 없습니다. 단순한 치우침 밖에 없습니다. 무한히 넓어지려면 중심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중심이며, ‘나’가 중심입니다. 천지 우주는 ‘전체이자 개인’ ‘개인이자 전체’인 상태입니다.
전체만은 없으며, 개인만으로도 없습니다. 그 ‘전체’가 무한한 허공이며, ‘개인’이 중심입니다.
천지는 무한한 개인, 무한 지금에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
중심과 무한한 마음을 비유한다면, 중심점에서 신호가 발산되는 것과 같은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수면에 자갈을 던졌을 때의 파장이 번져나가는 느낌입니다. 넓히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대로 퍼져 나갑니다. 마음을 넓히고, 지금에 집중합니다.
‘지금’에 중심을 두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마음을 넓혀 가면 됩니다.
치아를 닦고, 드라이어를 쓰거나 밥을 먹거나, 눈앞의 현실 하나 하나에 집중하면 됩니다.

여기에 정리가 필요한 것은 ‘감각’과 ‘의식’은 별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혼동하기 쉽지만, 별개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돌아가면 지금 있는 방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공감각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그때의 의식은 눈앞의 시야의 넓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익숙한 장소에 가서 기분이 편안한 것은 피부의 모공이 열려 이 공감각이 무의식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든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을 진정시켜 모공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상상이나 공상에 빠지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는 것은 상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떠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환상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것은 정신질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상이나 상상을 해도 지금의 현실에 집중하기 위해서 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구르지에프가 “인류의 대부분은 깨어 있지만 잠 들어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크린 속이 전부라고 믿고 끝까지 거기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사회 통념과 가치를 큰소리로 떠드는 누군가를 반쯤 졸린 상태로 무조건 따르고, 몽유병 환자처럼 생각 없이 쫓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치가 희미해져 있는 상태, 안절부절 움직이는 상태는 “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대로 눈 뜬 상태는 시야가 뚜렷한 상태입니다. 제대로 된 행동은 지금에 집중하고있는 것입니다. 구르지에프는 일은 열심히 할수록 좋다고 말했지만, 그야말로 잡념이 일어날 틈도 없이 지금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론을 좇으면 지쳐 버리고, 모르는 걸 알기 위해 애써 노력해도 힘들기만 합니다.
모르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흘려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밖에서 놀 때처럼 일단 머리는 놔두고 피부가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즐기세요. 그것은 마음을 넓히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앞으로 마음의 유연 체조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놀면서 시야를 넓혀보세요